세계비전제자대학 제2기 양육반을 수료한 이경희 집사입니다.
2019년 여름 즈음이었습니다. 매 주일 아침,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날, 22km에 달하는 연육교를 넘어서 올 만한 자리인가? 내가 무엇을 위해 가는가? 오랜 시간 불편한 마음이 쌓여 시간만 보내고 가는 그 자리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날 아침 주일 예배 후에 제 마음을 정리하고 남편에게, 어머니께 통보했습니다. ‘저는 더는 가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제 나이만큼 속해 있던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제가 이리 정리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간단치 않았음을 안 남편은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몇 차례 호소가 있었고, 엄마의 회유가 있었지만 저를 잘 알기에 모두가 묵묵히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오랜 시간 속해 있던 곳인 터라 함께 울며 기도해주고 호감을 표현하던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제 개인적인 일이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만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 쏙 빠졌을 뿐이었습니다. 섬김의 자리가 크지 않았던 제 존재감이 딱 그 정도였다고 봅니다.
생각의 왜곡은 서로의 생각을 들으려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기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더 자주 만나야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해서 떠났습니다. 이런 과정 가운데서 저로 인해 상처받은 분이 계신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제가 마음을 바꾼 건 타인의 생각을 들으려는 한 사람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가게 문을 열고, 마스크로 가려져 더 돋보이는 큰 눈으로 인사하며, 들어오셔서는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값을 미리 계산하고, 우리의 분주함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주신 지금 담임목사님, 김요한 목사님.
저희가 꿈꾸는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아내는 신앙의 본이 되는 리더를 소망한다는 저희의 이야기를 세 시간이 넘도록 경청하여 듣고는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처음 만난 저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다시금 말씀을 읽기 시작했고, 기도의 시간도 따로 내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저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말씀에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고, 하나님은 ‘저’를 ‘우리’로 부르셨음을 다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예배자’가 아니라 ‘비판적 관찰자’였음도 회개케 하셨습니다.
떠나있다 돌아온 공동체이기에 빠르게 하나 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1학기 양육 동안 생각도 못 한 불편한 시선들을 받기도 했고, 뜬금없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 삶을 나누지도,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도 않았던 제게는 이런 시선이나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당황하기도 했고, ‘내가 언제부터 남의 눈을 의식했던가?’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고 느껴진 어느 밤이었습니다. ‘내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가는 곳에 그런 불편함을 감내하고 가야 하는가?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라며 제 감정을 있는 대로 남편에게 쏟아부었습니다. 그런 제게 남편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난 네 결정을 항상 존중해 왔어. 이번엔 나도 너의 결정에 함께 할게!”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복잡한 마음으로 참석한 새벽예배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녀에게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두라는 말씀이 제게 부딪혀 왔습니다. 양육 중에도 하셨던 말씀이 마음에 남아 산책로에서 한 번도 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하나님께 떼를 썼습니다.
“하나님! 전 지금 제 모습이 찌질해서 견디기가 힘들어요. 다른 일도 아니고 부딪혀 보지도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부담으로 어렵게 돌아온 이곳을 도망치듯 또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제 아이들에게 무엇을 신앙 유산으로 남겨야 하는지 모르겠으니 보여주시든 들려주시든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해요!”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운 징징거림에 ‘딱!’ 그 순간, 그 즉각적인 하나님의 응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새벽을 깨우는 기도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5일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 깨워주시고 사고 없이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게 해 주심을 감사하며 나름 작정한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점심 무렵 뒤늦게 채팅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채팅방의 막내가 올린 글은 문자임에도 두려워하고 있고, 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통화는 눈물이 나서 못 하겠어요. 검사 결과가 치료할 수 있는 만큼만 아픈 것으로 나오게 기도해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양육시간에 아픈 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목사님은 당신의 경우 기도하거나 말씀을 읽으며 감동을 받은 부분을 나눴는데, 받으시는 분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아픈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한 내용을 나누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다시 교회에 나와 새벽 예배에 참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주 금요일에 병명이 나왔습니다. 병명은 ‘폐선암’이며 뇌는 깨끗하고 뼈에 퍼져있는데, 수술은 하지 않고 ‘유전자 약물치료’를 찾아서 치료한다는 문자를 받았고, 그 일로 함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섬세하고 담대한 의사를 만나게 해 주세요! 조직검사에 딱 맞는 치료제를 한 번에 구하도록 해 주세요! 어린 자녀가 있으니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세요! 몸의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전에 빠른 치료과정을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친구에게 용어 하나에도 배려하는 의사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친구가 조직검사에 맞는 치료제를 찾기 위해 입원하는 날 아침, 딱 맞는 치료제를 찾았으니 입원이 아니라 약에 대한 설명만 들으러 간다며 기도 응답에 감사하다는 문자를 주고받았습니다. 저희는 마냥 신났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 친구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울지 않고 통화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료제를 복용하고 결과가 나온 날, 병원에서 잘하고 있다고 칭찬받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에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힘들어 아침 시간을 힘겹게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게도 두려움이 몰려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주일예배 중 주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두렵습니까?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려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이 말씀을 제게 주신 응답으로 메모했고, 친구와도 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최근에 진료 결과를 듣고 돌아온 친구는 오랜 싸움을 할 준비를 하고 있고,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갈 마음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두려운 순간이 있을 수 있으나, 치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간구하는 일에 함께 하려고 합니다. 함께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심으로 누군가를 공감하며 그를 위해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새벽예배를 처음 간 날, 우리 부부는 무슨 일 있느냐는 목사님의 걱정 어린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함께 예배함이 누군가에게 염려케 하는 신앙생활을 해 온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새벽예배를 통해 ‘집사님 뒤에서 같은 마음으로 기도합니다!’는 기도 친구를 붙여 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자리가 불편할까 봐 이쪽으로 앉으라 권해주시는 권사님의 조용한 응원도 받았습니다. 함께 기도함이 감사하다는 전도사님의 따뜻한 문자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오가는 길을 조심히 다니라는 후배의 고마운 마음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화요 양육반은 우리 교회에서 가장 성격이 강한 사람들의 구성인듯합니다. 그런데도, 양육시간마다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서로의 삶 속에서 만난 이들, 특히 기도가 필요한 이들의 기도를 내 기도인 듯 함께한 우리였습니다. ‘내가 우리가 됨’을 느끼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래전, 공동체 안에서 고집스레 ‘나’로 버티고 있을 때. ‘우리’라 손 내밀던 이들이 지금 제가 매 순간 은혜받는 자리에 함께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손 내밀어 기뻐하며 함께 할 줄 알았습니다. 쉽게 풀릴 줄 알았던 그들의 불편한 마음과 생각을 듣고 나누며 조금씩 나아질 줄 알았던 상태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 마음이 아픕니다. 50년의 신앙경력에도 부끄러운 깊이의 믿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길로 이끌 수 없음을 알기에, 다시금 하나님께 떼를 쓰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저는 다소 무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크게 달라질까? 라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이야기했던 공동체에 대한 기대보다 훨씬 크고 세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변화의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소망한 ‘리더의 삶’에 비할 바 없이 헌신하여, 소명 받은 이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젊은 목회자를 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말씀을 듣고 움직이는 것을 훈련하는 양육 과정을 통해 리더의 본이 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교회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리더로 양육되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제 삶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비전이 단순히 표어가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임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르심에 응하여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의 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그렇게 알게 된 그들의 삶 속에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재정을 흘려보내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장로님들이 주축이 되어 돌아보고 계신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괜한 가족들까지 고생시키는 사람들쯤으로 선교사를 바라봤던 제 모습에 얼굴이 화끈대는 부끄러움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선 곳이 땅끝이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제게 붙여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며,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무엇보다 물질을 발아래에 두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해 일하고자 하실 때, 하나님이 저를 통해 누군가를 세우고자 하실 때, 복의 통로로 사용하심을 경험한 바 있기에, 우리 공동체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올해 유난히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 뼘 길이 손바닥만 한 인생’이라 하는 삶을 살면서, 별 것 아닌 일을 상처라 싸매고, 아파하고, 으르렁대며, 함부로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는, 말로는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겠다 했지만, 늘 내 아픔이 가장 크고 내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먼저였던 저를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제가 추구했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쁠까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제 성품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꿔 가심을 느끼는데, 제 기질과 성격은 좀처럼 변하질 않는 것 같아 지금도 종종 사고를 칩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는 분과의 대화 중에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조그만 속삭임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듣기를 소망하라’는 기도제목을 나눴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움직이기 위해 제 급하고 거친 기질을 제 안의 성령님께서 바꿔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제 안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시작된 첫 새벽의 그 말씀, 제 삶의 마지막 유언을 무엇이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책임을 지는 어른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한 학기 양육 동안 우리의 스승이 되어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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